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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부활 1 by 레프 톨스토이

 

부활 by 레프 톨스토이


안녕하세요.로즈밀크입니다:)

얼마전 제주 롯데호텔로 호캉스를 가면서 썬베드에서 읽을 책으로 부활을 챙겨 갔는데요.


레프 톨스토이 부활1


호캉스에서 읽기엔 심오한 책이지만 썬베드에 누워서 천천히 생각하며 읽기엔 딱이더라구요.
(읽다 썬베드에서 기절한 건 안비밀입니다!)

요즘 예전엔 흥미1도 없었던 고전문학소설에 푹 빠져서 출근길 걸어가면서도 읽고 있답니다.

아침드라마 못지 않게 막장인 부분도 나오고 굉장히 흥미진진해서 딱딱한 책 표지에 거부감 느끼시지 마시고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생의 만년에 부활을 완성했다고합니다.

주인공 네흘류도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모습에 작가의 연륜이 느껴지며, 동시에 인간 내면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도 감탄을 자아낼 만하는데요.


부활 1권 내용 스포


부유한 집안의 순수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네흘류도프 공작은 젊은 시절 고모집에 잠시 머무르며 카츄샤라는 여인에 대해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군인이 되고 타락해버린 네흘류도프는 카츄샤와 다시 만나지만 상처만을 주게 됩니다. 상처 입은 카츄샤는 가장 선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주인공에게 배신 당하며 유곽에서의 삶을 선택하며 술과 담배로 의미없이 삶을 살아갑니다.

세월이 흘러 카츄샤가 독살이라는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게 되는데, 배심원으로 참석한 네흘류도프가 카츄샤를 보며 그녀의 타락에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네흘류도프는 내면의 동물적인 자아와 정신적인 자아와의 갈등하며 순수했던 이전의 정신적인 자아를 찾게 됩니다.


제주 여행 호캉스 책 부활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은 가벼운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물적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거의 언제나 그것에 거스르며 온갖 물음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결정할 필요가 없으며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되 그 결정이 언제나 정신적인 나를 거스르고 동물적인 나를 위해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p110



나 자신을 믿는 한편 어두운 내면과 싸우는 것보다 시류에 편승해서 다수가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의 유혹에 공감합니다.

평소 주변 눈치와 상황을 살피며 내 판단보다 분위기에 맞춰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내 정신적인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모두가 자신을 위해,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만 살았고, 하느님과 선에 대한 모든 말은 속임수였다.

어째서 이 세상 모든 것이 그처럼 악하게 만들어져 모두가 서로에게 악을 행하고 괴로움을 겪는지 의문이 든다 해도 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p284

 

 

썬베드에서 읽는 부활

 

어젯밤에 말을 걸던 유혹자가 또다시 네흘류도프의 마음 안에서 입을 열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부터 그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무엇이 유익한가라는 물음으로 그를 이끌려고 애썼다.
p318

현대 사회 못지 않게 계급사회에서, 오히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더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았나 싶네요.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내 행위로부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과연 자신의 부, 즉 약탈을 자랑하는 부자들과 자신의 승리, 즉 살인을 자랑하는 사령관들과 자신의 위력, 즉 강압을 자랑하는 군주들 사이에서는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삶이며 선악에 대한 개념을 왜곡하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단지 그런 왜곡된 개념을 가진 사람들의 범주가 더 크고, 우리 역시 그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p323



부유한 위치에 있는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어머니와 친구들처럼 정당화하지 않고 세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누구보다 분별력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민중의 삶을 눈으로 직접 보며, 왜 그런 삶을 살게되는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지 의문을 품으며 지주로서 선을 행하고 도와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생각이 지배하는 집단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고 오히려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지만, 주인공은 젊은 시절 지녔던 옳은 신념 덕분에 내면의 싸움에서 자신의 신념에 더 힘을 실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사람들이 그처럼 분명한 것을 보지 못하는지, 어떻게 그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지 놀랍기만 했다.

'민중이 사멸하려고 해. 그들은 자신들이 사멸해 가는 과정에 익숙해져 버렸어.
그들 안에서 사멸 과정 특유의 생활 방식이 형성됐지... 그리고 민중은 이런 처지에 아주 서서히 빠져들면서 스스로도 그 비참함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불평조차 하지 않아. 그 때문에 우리도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p456




모든 게 단순해진 것은 지금 그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결정할 수 없었는데 타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p471

톨스토이가 말년에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했던 모습이 부활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아무 죄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직접 확인하며, 카츄샤와 가난한 자들을 통해 선과 하느님을 의심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톨스토이 부활 1



아직 1부만 본 상태지만, 2부도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긴 장편소설이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겠네요.

아니면 독서를 위한 호캉스를 한번 더 가야할까요.